저희 집에는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번듯한 기술자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습니다. 2년 안에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지만, 그 기간동안 전 한푼도 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넌 집안의 빚을 갚아야 하는데 거기서 뭐하고 있냐. 안되는거 하지 말고 얼른 내려와라.” 너무 서럽고 화가 나서 모진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제가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거지인데 어떻게 아버지께 효도를 합니까? 제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날 그냥 내버려 둬요!”
오디션에 계속 낙방하다 여덟 번 만에 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했을 때 저는 이를 악물고 다짐했습니다. ‘두고 봐라. 꼭 성공해서 인정받을 테다.’ 빚더미에 시달리는 우리 집에서 남은 희망은 오로지 저 하나였습니다. 쓰러져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저는 한시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저는 성공한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달인’ 김병만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으니까요. 그런데 누구보다 이 소식을 가장 기뻐하실 아버지는 잘 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전혀 모르십니다. 치매로 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신 지 5년이 넘었거든요.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고 그나마 푼돈이라도 조금씩 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저는 아버지께 호언장담했습니다. “저기 건너편 땅 보이시죠? 거기 땅을 사서 멋진 집 지어드릴게.” 웃음을 팔아 돈을 버는 순간마다 머리 속에는 온통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뿐이었습니다.
몇 년간 부지런히 돈을 모아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땅을 산 그 날, 아버지가 대장암에 걸리셨고 10년째 치매가 진행 중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시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것이 자식된 도리인 줄은 알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비를 대야 하는 사람은 나뿐인데 쉬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오랜 시간 아버지를 외로이 병상에 모셔둔 뒤, 늦게나마 그 모습을 뵈러 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싸늘한 표정으로 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왠지 제게 서운한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병실을 나서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요.
주위사람들은 저더러 뜨더니 변했다고, 아비 걱정도 않는 저건 아들도 아니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열심히 돈을 벌어 호강시켜 드리면 아버지가 제 마음을 알아주실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려오느라 아버지를 보살필 여유조차 없었던 제 모습이 이제와 왜 이리도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비록 힘들고 보잘것 없을지라도 그 때마다 조금씩 무어라도 해 드렸다면 아버지께서는 지금 보다 덜 아파하셨을 텐데. 바보처럼 이제야 깨닫습니다.
모든 것들을 모아 한번에 근사하게 효도해 드리려던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효도라는 것이 부모님께 아주 크고 거창한 선물을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매순간 진실한 공경의 마음을 보여드리는 것임을. 생각해봅시다.
어버이날을 맞아 개그맨 김병만 씨의 사례를 보면서 효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000의 생각하는 아침에서 2011. 5. 6(금)